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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관리정치의 탄생

By on 5월 18, 2015 in Something | 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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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이 말이 갖는 지극히 일반적인 의미에서, 요컨대 중세, 16세기, 17세기에 일반적으로 작동하던 시장은 한마디로 말해 본질적으로 정의의 공간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정의의 공간일까요? 여러 의미에서 그러합니다. 우선 시장은 극도로 다수의 엄밀한 규제들로 에워싸인 공간이었습니다. 요컨대 그것은 시장에 가져올 수 있는 물품들과 관련된 규제, 이 물품들의 제조방식과 관련된 규제, 이 상품들의 원산지와 관련된 규제, 지불해야 할 세금과 관련된 규제, 판매절차와 관련된 규제, 그리고 물론 고정가격과 관련된 규제였습니다. 그러므로 시장은 규제로 에워싸인 공간이었습니다. 또 실천가들이나 이론가들 모두 시장에서 확정된 판매가격을 공정가격 혹은 아무튼 공정가격이어야 하는 가격으로 간주한다는 의미에서도 시장은 정의의 공간입니다. 다시 말해 이 공정가격이란 수행된 노동, 상품의 필요, 소비자들의 필요 및 가능성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해야 했던 것입니다.

<미셸푸코,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p.57>

 

대략적으로 말씀드리면, 주권이라는 낡은 정치체계 내에서 주권자와 신민들 간에는 주권자에게 신민을 보호하도록 책임지우고 강제하기까지 하는 일련의 사법적/경제적 관계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보호는 외적인 것이었습니다. 신민은 자신의 주권자에게 외부 또는 내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자유주의의 경우, 상황은 완전히 다릅니다. 확보되어야 하는 것은 이제 단지 그런 종류의 개인에 대한 외적 보호가 아닙니다. 자유주의는 어떤 메커니즘의 내부에 들어가서, 거기서 위험이라는 이 개념을 중심으로 개인의 자유와 안전을 매 순간 조정해야만 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한편으로 자유주의가 근본적으로 이해관계를 조작하는 통치기술이라면, 이것은 동전의 이면 같은 것인데, 다른 한편으로 자유주의가 이해관계를 다룰 수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험을 관리하는 동시에 안전과 자유에 입각해 성립된 메커니즘까지 관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같은책, p. 103>

 

달리 말하면 이 자유주의 체제의 지지가 사법적 정당성 이외에도 과잉 생산물로서의 항구적인 합의를 생산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제제도로부터 국가에 이르게 되는 계보와 대칭을 이루며 경제제도로부터 체제 및 체계에 대한 인구의 포괄적 지지에 이르게 되는 회로를 생산하게 되는 것, 바로 이것이 경제성장이며 그 경제성장에 의한 복지의 생산인 것입니다.

<같은책, p.130>

 

질서자유주의는 사회적 개입주의를 수반하는 경쟁적 시장경제를 기획합니다. 이 사회적 개입주의는 그 자체로 ‘기업’이라는 단위를 근본적 경제 주체로 재평가 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적 혁신을 함축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자본주의의 실제적 위기에 관한 이데올로기, 경제 이론, 정치적 선택에서의 단순한 결과와 기획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게 되는 것은 아마도 짧거나 약간 긴 기간 동안 일어난 통치술, 또는 아무튼 자유주의 통치술의 혁신 같은 어떤 것의 탄생이었습니다. 이 통치술의 특징, 그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관건에 관해서는 이것들을 슘페터와 대비시켜봄으로써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슘페터는 질서자유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질서자유주의자들은 베버와 마찬가지로, 맑스 또는 아무튼 맑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절대적이고 근본적인 기원을 자본과 그 축적의 모순적 논리 내에서 찾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슘페터와 질서자유주의자들은 자본과 그 축적의 논리에는 내적 모순이 없으며 결과적으로 순수한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자본주의는 완벽하게 지속가능하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바로 대체적으로 슘페터와 질서자유주의자들에게 공통된 테제의 총체입니다.

<같은책, p.258>

 

슘페터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이런 집중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즉 자본주의의 발전 내부 자체에서 일종의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불가피하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슘페터는 사회주의를 “중앙관청이 생산수단과 생산 자체를 관리할 수 있게 되는 체계”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필연성에 편입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자본주의 경제에 고유한 비논리성 혹은 비합리성에 의한 것은 아니며 경쟁시장에 의해 야기된 조직적이고 사회적인 필연성에 의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같은책, p.259>

 

신자유주의자들이 다시 취하는 것은 바로 이 혁신의 문제, 그러므로 결국 이윤의 경향적 저하라는 문제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자본주의의 윤리적/심리학적 문제, 혹은 슘페터처럼 막스 베버와 그리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윤리적/경제적/심리적 문제로 다시 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혁신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혁신의 문제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굳건함이나 경쟁의 항구적인 자극을 신뢰할 수는 없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혁신이 있다면, 다시 말해 새로운 것을 발견한다면, 생산성의 새로운 형식을 발견한다면, 기술적 유형의 혁신을 이룩한다면, 그것은 일정한 자본, 즉 인적자본의 소득, 다시 말해 인간의 수준에서 행해진 투자 총체의 소득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좀 더 총괄적인 인적자본 이론 내에서 혁신의 문제를 다시 취하고, 1930년대 이래의 서구 경제사와 일본경제사를 재검토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국가들이 최근 40~50년간 이뤄낸 엄청난 성장은 고전적 분석의 가변항, 다시 말해 토지, 자본, 노동시간으로 이해되는 노동, 즉 노동자와 노동시간의 수요[수량]로 이해되는 노동에 입각해서 결코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주려고 했죠. 인적 자본의 구성, 인적자본이 증가하는 방식, 인적자본이 증가된 영역, 투자의 자격으로 인적자본에 유입된 요소 등에 대한 섬세한 분석만이 오로지 이 국가들의 성장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책, p.330>

 

..한편으로는 ‘기업’의 형식을 사회체나 사회조직 내에서 실제적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사회체를 재검토해 그것이 개인의 단위가 아니라 기업 단위에 따라 분배/분산/파급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인의 삶은 사회 혹은 극단적으로는 국가 같은 대기업의 틀 내부에 개별적 삶으로서 기입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혼합되어 착종된 다수의 다양한 기업의 틀 내에 기입되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 기업들은 개인의 수중에 있어야 하고, 또 개인들의 행위/결정/선택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만큼 그 크기가 제한적이며, 그가 단 하나의 기업에 종속되지 않을 마늠 충분히 숫자가 많아야 합니다. 결국 자신의 사유재산, 가족, 부부생활, 보험, 퇴직 등과 관련해 개인의 삶 자체가 자신에게 일종의 항구적인 기업, 다수의 기업이 되도록 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이는 기업, 기업들, 가장 미세한 단위의 기업 모델에 따라 사회를 재형식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독일 질서자유주의자들의 사회정책이 갖는 측면 중 하나입니다.

<같은책, p.335>

 

그런데 이런 ‘기업’형식의 일반화는 어떤 기능을 할까요? 물론 한편으로 경제 모델, 수요와 공급의 모델, 투자-비용-이윤의 모델을 증가시켜 이것들이 사회의 모델, 심지어는 실존의 모델, 개인이 자기 자신, 자신의 시간, 자신의 이웃, 자신의 미래, 자신이 속한 단체, 자신의 가족과 맺는 관계의 형식이 되게 만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먼저 이 모델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렇게 기업을 보편적으로 일반화된 사회 모델로 만들려는 질서자유주의자들의 구상은 자신들의 분석과 계획화 내에서 자신들이 일련의 도덕적/문화적 가치의 회복이라고 지시하는 바에 근간으로 이용됩니다. … 질서자유주의자들의 시대에 유행하던 고전적 용어를 사용해 말한다면 이 기업의 도식과 함께 수행해야 할 중요한 것은 개인이 자신의 노동환경, 삶의 시간, 부부생활, 가족, 자연환경과 관련해 이제 더 이상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질서자유주의자들이 꿈꾸는 기업사회란 시장을 위한 사회이자 시장에 대항하는 사회입니다. 시장을 향하도록 만들어진 사회이자 시장에 의해 야기되는 가치나 생활에 관련된 효과들을 벌충하는 사회인 샘이죠.

<같은책, p.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