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자본주의
두가지 생각이 대립한다.
첫째, 나는 내 존재 전체를 자본이 요구하는 하나의 기능과 맞바꾸고 싶지 않다. 전문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 '전문가' 자격을 위해 지금 회사는 나에게 너무 많은 것들을 희생하길 요구한다. 늦은 밤 야근, 주말 출근, 정해져 있지 않은 스케쥴, 스트레스, 이런 것들이 생업이라는 틀을 넘어 나머지 내 삶 전체 영역을 침식하고 갉아먹고 지배한다. 적정한 수준의 투자가 아니라, 삶 전체를 거기에 쏟아 부을 것을 요구한다. 생업은 생업이 아니라 생 자체가 되어버린다. 나는 컨설턴트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주말에는 만나야 할 친구들이 있으며, 평일 저녁에는 읽어야 할 책들과 써야할 글들이 있다.
둘째, 삶이란 성취다. 어떤 위대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과 열망이 필요하다. 성공은 노력과 기다림, 희생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 약간의 불만과 희생은 성취를 위한 투자일 뿐이다. 삶은 무한한 경쟁이며, 이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만이 성취를 거머쥘 수 있다. 꿈, 도전, 열정을 갖고 절실히 원하며 간절하게 매진해도 성공을 보장할 수 있을까 말까다. 어느 한 분야에 미친듯이 골몰해야만 한다고 강조하는 수 많은 서점의 자기계발서들을 보라. 그 글들은 진실을 담고 있다. 진정한 노력없이 남다른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이 두 부류의 반대되는 생각은 아직도 오락가락하며 나를 일터에서 이랬다 저랬다-뺑기를 부렸다 열심히 하게했다-하게 만들지만, 거기에 한가지 사실이 더 더해져 나를 극도로 혼란스럽게 한다. 그것은 내가 삶에서 진정으로 하고자 원하는 것, 실현되어야 할 자아의 가치가 자본주의적 교환가치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 내에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찾아서 거기에 맞춰갈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꿈이 기업가인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가. 수 많은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회사에서 배워나가면서 의심없이 매진하면 된다. 꿈이 예술가인 사람은 고민한다. 전업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는 기업가의 목표와는 달라야 한다. 만들어지는 이야기의 제1 가치가 기업가가 추구하는 이윤이나, 교환가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상업성이 결부되면 예술은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므로,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예술은 돈으로 교환될 수 있는 상품성과는 오히려 최대한 멀리해야 한다. 팔기 위한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
여기에 모순이 생긴다. 누구 말대로 기타를 치려면 엄지가 터지고 공부를 하려면 머리가 터지고 노래를 하려면 목이 터진다. 그런데 이 터짐에는 돈이 되는 것들과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은 사실 돈이 되지 않는 터짐을 자신의 잠재적 꿈으로 지니고 있다. 그런데 운 좋게 엄지가 터져 기타를 치는 것으로 생업을 유지할 수 있게 된 사람들도 그 행위를 '팔기 위한 것'이라 말하면 싫어할 것이다. 게중에는 서태지와 같이 F.M Business 같은 곡을 부르며 ("너와 나는 왜 도대체 어떤 목적에 여기서 마주보며 노래를 흥정하는거야") 알면서 짐짓 자기는 아니라는 듯이 자신의 순수함을 믿어달라는 장사꾼들도 있다. 게중에는 공지영처럼 책을 쓰는 것이 "먹고 살기 위한 것임"을 순순히 인정하면서도, 그저 금밖에 서 있었던 노동운동의 경험을 자신의 이야기로 지어 파는 작가들도 있다. 나는,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들이 자신의 예술을 먹고 사는 문제를 떠나 조금 더 순수하고 솔직하게 대할 수 있었다면,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다. 그리고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되지 않는 터짐을 무시하고 자본이 요구하는 곳으로, 경제 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곳으로 자신의 삶을 맞춰가며 심지어는 자신의 꿈을 개조하기 까지 한다.
내 꿈은 분명히 자본주의적 구조 밖에 있다. 그건 지금껏 세상에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다(물론 지금 말하기는 부끄럽다. 나는 꽤 동떨어져 있으므로.). 운이 좋으면 상품화 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나의 순수한 놀이로 그쳤으면 한다. 오히려 지금 당장 상품화 되지 않아도 언젠가 내가 죽고 이 땅에서 사라지더라도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는, 단 한권의 책. (개인적으로 유전자를 후세에 전하려는 생물학적 본능이 지식과 정보의 수혜를 입어 이러한 꿈이 되었다 생각한다. 이 또한 권력의지이고, 강력한 삶의 에너지일 것이다.) 이건 꿈이다. 그러나 이 꿈은 실현되더라도 나의 경제적인 삶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내 문제는 잠재적으로 생업과 예술활동을 분리하려는 것에서 출발하며, 생업은 절대적으로 내 창조적 에너지를 갉아먹지 않는 수준에서 그쳐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두번째 부류의 생각대로, 어떤 꿈이든 그것을 실현하는데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한다. 이 경우에는 돈/안정된 생활과 같은 기본적인 사회적 성공이다.
과연 절충적인 대안은 없는 것일까. 예술적 성취를 위해서 사회적 성취를 포기하거나, 사회적 성취를 위해서 예술적 성취를 포기하거나, 삶은 이 두개의 영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어느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사회적 성취를 일단 포기하고 예술을 통해 결국 두 가지를 다 얻는데 성공한 일부 예술가들은 나를 비웃을 것이다("너는 바보다. 두 가지 성공은 일치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성취를 포기하고 자기 예술의 길을 가는 수 많은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로 나를 비웃을 것이다("너는 비겁하다. 너는 꿈에 절실하지 못하고 안전한 곳에서 꿈이란 이름의 겉멋을 부리려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본이 제시하는 적당한 꿈을 가지고 교환가치에 매진해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도 나를 비웃을 것이다("너는 미쳤다. 교환가치가 없는 꿈은 기껏해야 취미생활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세 부류의 사람이 나를 비웃을 때 나는 그들에게 무엇이라 반론을 해야 하나. 그렇게 서성거리기만 하는 내가 우스웠는지 삶이 나에게 어떻게 할지 지금 당장 선택하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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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어려운 문제이군요.
혹시나 답이 생각나시면 제게도 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마음 여유가 없다보니
한달이 훨씬 지나서야 답변을 다네요 ㅎㅎ
방문 감사합니당~
꿈에 매진하여 자본과 명예를 거머쥔 사람도, 지금 그 꿈에 계속 정진하고 있는 사람도 - 어쨌든 너를 비웃을 자격은 없어.
근데 언젠가부터 니가 하는 이런 말들이.....난 좀 그렇다. ㅋㅋ
자격없으면서 비웃지 말랑께롱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