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자카르타
세상의 수 많은 이질적인 것 들이 모여서 하나의 도시 자카르타가 되었다. 자카르타에는 풍경을 이글이글 왜곡시키는 건조와 더위가 에어콘의 시원한 냉방과 공존했다. 얼음과 함께 샘물을 대나무통에 담가 파는 노점상인이 길거리에 있는가 하면, 세나야 시티에는 구찌, 베르사체, 페라가모 명품점들이 함께 늘어서 있었다. 마치 뉴욕인 것처럼 하늘을 찌를 듯한 고급 비즈니스 건물들이 빽빽한 중심가를 지나 외곽을 조금만 벗어나면 낡은 시멘트 집에 형형색색 촌스럽고 천박한 간판을 내건 시골 슈퍼마켓들이 나왔다. 벤츠, 폭스바겐, BMW는 문도 제대로 달리지 않은 낡은 마을 버스와 함께 달렸다. 그 사이로 파리떼 같은 오토바이들이 두려움도 없이 차들 사이사이에서 장난감처럼 주행했다. 세나야시티 서점에는 이슬람 경전과 기독교 십자가가 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걸려있었다. 뿐만아니다. 부디 내가 잘못 들은 것이길 바라지만, 인도네시아에는 580여개의 지방언어가 있다고 한다. 내가 중학교때 부터 핸드폰에 저장해온 사람들 연락처의 합계 보다 많은 수의 언어가 한 나라에 존재했다. 자카르타는 그 다양성의, 수도다.
지난 3월 3일, 아시아 생산성 협회에서 열리는 컨퍼런스를 핑계삼아 나는 자카르타로 떠났다. 그 때 나는 아직 채 겨울이 가시지 않은 한국의 계절에 맞춰 점퍼를 입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후텁지근한 바람이 통로로 불어왔다. 저녁 8시 30분이 지났는데 온도는 29도를 넘기고 있었다. 더웠다. 점퍼 깃에 달린 풍성한 털이 웃기게 느껴졌다. 비행기에서 내렸을 뿐인데, 사람들은 모두 면티나 반팔 차림이었다. 갑작스런 여름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자카르타에는 두 개의 계절밖에 없었다. Hot과, Very Hot.
이름에서 이슬람의 운치를 느끼게 하는 '술탄'이란 호텔에 묵었다. 호텔은 아시아 생산성 협회가 예약해 줬다. 호텔 내부에 들어서니 묘한 향내가 났다. 수속을 마치고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다 그 냄새를 알아차렸을 때, 나는 문득 훗날 자카르타를 기억한다면 먼저 이 향기를 떠올리게 될 것임을 느꼈다. 조금 쓸쓸하고 착 가라앉은 듯한 우울한 향기. 호텔은 가운데 적당한 크기의 야외수영장이 있는 정원을 끼고 길게 이어져 있었다. 2군데의 뷔페식 식당과 2군데의 간소한 카페, 와인바, 스파, 비즈니스 센터 같은 것들이 주요 시설물이었다. 방은 혼자쓰기에는 너무 넓었는데, 킹사이즈 침대위에는 베개가 3개나 있었다. 바닥에는 카펫이 깔려있었고 TV가 있었지만 볼만한 채널은 영어로 더빙된 일본애니메이션이 나오는 채널 하나 뿐이었다. 한쪽 벽면에 바깥 경치가 보이는 널찍한 유리와, 그 앞을 미닫이로 열고 닫을 수 있는 커텐용도의 문이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앞에는 업무를 볼 수 있는 책상과, 간편하게 앉아서 쉴 수 있도록 나무 등받이가 있는 반원형태의 1인용 쇼퍼가 있었다. 인터넷은 연결되지 않았다. 나는 나중에야 비즈니스 센터에서 인터넷 연결을 위한 선불카드를 판매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틀간 컨퍼런스 본 행사가 진행 되었는데, 말레이시아, 싱가폴, 피지, 베트남, 일본 등 아시아 각국 인사들이 참가했다. 대부분 정부측 인사이거나, 주요 기업 CEO들이라서 나와는 사회적인 신분 차가 있었다. 행사진행기간 동안 라오스에서 온 아주머니와 이란에서 온 아저씨, 말레이시아에서 온 아저씨2와 가끔 이야기를 했다. 이 분들은 이름이 너무 길고 복잡해서 기억할 수가 없다. 이 사람들도 내 복잡하고 어려운 이름을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진행요원이었던 알람시아는 친절한 사람이라, 무뚝뚝하고 사람낯을 가리는 내게도 먼저 살갑게 굴어주는 바람에 꽤 친해질 수 있었다. 그는 토속 인도네시아인인데, 코에 콧털이 무성했다. 알람시아는 이틀간 본 행사를 마치고 주최측에서 마련해준 투어를 인솔하는 동안 내게 인도네시아에 관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투어는 자카르타 인근에서 환경친화적인 경영방식으로 모범이 되고 있는 회사들을 방문하는 투어였다. 투어버스가 자카르타를 벗어나자 곧바로 낡은 시멘트 집에 천박한 간판들이 걸린 조잡한 길이 나왔다. 그 길가의 낡은 집들은 인도네시아의 갑작스럽고 준비되지 않은 경제적 발전을 보여주는 간판들을 달고 있었는데, 그 간판들은 한국의 지방 도시에 있는 골목길에 걸릴법한 것들이었다. 그 시골도 도시도 아닌 어정쩡한 정체성을 가진 부조화의 길을 투어버스가 달리는 중에 알람시아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자카르타로 일을 하러 온다고 설명해 주었다. 도로를 보니 정말 오토바이가 많았다. 차와 같은 수, 아니 차보다 오토바이가 조금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알람시아도 오토바이를 탄다고 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7세만 지나면 누구나 오토바이 면허를 딴다. 인도네시안 오토바이는 일정 마지막날 근처 쇼핑몰로 택시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지겹게 보았다. 자카르타의 도로는 조금 무법적이다. 도로는 최대한 교차로를 피하도록 설계되었다. 차들은 신호없이 달렸고, 차선없이 달렸다. 차들 사이에 조그마한 공간이 생기면 빈병에 쏟아붓는 물 처럼 오토바이들이 끼어들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안에서 몇 번인가 아찔한 순간을 겪으며, 어떻게 오토바이와 차가 부딪히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한참동안 의문에 빠졌었다. 나는 절대 자카르타에서는 운전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98년에 수하르토가 하야하면서 50여년간의 기나긴 독재가 끝났다. 다민족 국가답게 동티모르 사태처럼 소수민족을 핍박해 정권이 군사적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있었다. 보통 인민이 온순하면 독재가 길어진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세계 최고로 온순한 사람들이다. 독재라는 개념이 민주주의라는 반대항에 비춰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독재가 생겨난 시점은 곧 민주주의가 생겨난 시점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라 해봤자 길어야 1789년의 프랑스대혁명이 시작점일테니, 약 200년 중의 50년, 인도네시아는 민주주의가 생겨난 이래 1/4에 해당하는 기간에 해당하는 독재체제를 허용한 것이다. 그나마 그 이전에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으니, 사실상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 역사는 최근 10여년의 기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이력을 증명하듯, 컨퍼런스에는 무려 '미스 인도네시아2008'이 참석했다. 한국에서라면 이명박이 가는 곳에 미스코리아가 못갈 것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또 굳이 오지는 않지 않는가. 나는 컨퍼런스에 들어가자 마자 앞자리에 앉아있는 미스인도네시아를 발견했을 때 권력과 미녀의 상관관계와, 인도네시아의 근대사를 떠올리고는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건그렇고 세계 각국의 미남은 나라마다 달라도 미녀는 어디서나 미녀였다. 미스 인도네시아 2008은 왕관을 쓸 자격이 있었다.
급격한 발전 탓으로 인도네시아의 물가체계는 속절없이 꼬여있었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택시로 30분이 넘게 걸렸는데, 택시비가 우리나라 돈으로 10000원이 채 안나왔다. 그런데 호텔에서는 캔 콜라를 3000원에 팔고 있었다. 어이없는 것은 세나야 시티다. 세나야 시티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번화한 5층짜리 쇼핑몰이다. 그 안에는 구찌, 페라가모, 버버리에서 부터 3D영화관, 어린이 전용 미용실까지 인도네시아의 이미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세상의 모든 명품들과 귀족들을 위한 서비스가 모여 있었다. 가격은 한국에 비해서도 결코 싸지 않아서, 평생 택시를 운전해도 여기있는 가방하나 사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 재화는 그 나라의 물가 사정을 보지 않고 가격을 책정하나보다. 대부분의 자카르타 사람들은 이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 수 없다. 다만 그들은 유리창에 진열된 다른 나라의 명품들을 보고, 소유와 세련에 대한 욕망만을 키워간다. 그 욕망들의 추동이 우리나라에서 지난날 그랬던 것 처럼, 사람들을 경제 발전에 대한 희망에 부풀게 하고, 그들의 뇌리에 부의 절대적인 가치를 각인시키고, 자본의 착취를 정당화할 것이다. 시골도 도시도 아닌 모호한 길 위를 달리던 투어 버스는 인도네시아의 물신화된 앞날을 비춰주었다. 그 물신화는 문짝도 없는 낡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에게 벤츠와 BMW를 몰고다니는 사람들을 보여주며, Very Hot한 계절을 에어콘 냉방으로 쓸어내 버리고는, 여자 맛사지사로 하여금 맛사지를 받는 외국인에게 혀짧은 영어로 '왜 섹스를 하지 않나요?'라고 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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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도 가따오고 좋겠다.. ㅜㅜ
ㅎㅎ 좋더라 ㅋㅋ학교는다닐만하냐 ㅎㅎ
아이폰에 블로그가 첫페이지로 되어 있더라 ㅎ 회사 메일의 밋밋한 후기보다 훨씬 생생하당 ㅋ
아이폰으로 코멘트 답글
달아놓고 사파리 닫았는데
첫페이지 남아있었나 보네
아이폰 좋더만
간단히 답글도 달 수 있고
'스마트폰 당장 사고 싶지만 기다린다' 모드. 흠.
요즘은 어찌되든 좋게 되버려서 날씨만 좋으면 만사 오케이. ㅎㅎ
달관의 자세.
그러다가 하늘에 두 개의 달이 떠있는걸 깨닫고는
기겁하겠지. 1Q84.
대만에 프로젝트가 잡혀 2달간 있을 거 같습니다 ㅋㅋ (목욜 출국)
허접한 영어실력이 걱정되네요 -_-
저도 무사히 다녀올게요 ㅎㅎ
와우
글로벌 컨설턴트~
대만에도 그런거 하는구나?!
아녀~ ㅋㅋ
저희팀 거의 풍지박산 됐구요 ㅠ_ㅠ (사실상 해체)
대만 제조회사의 EU 물류 전략 프로젝트에 참가했어요~
한동안 SCM 플젝만 할거 같습니다.
흐흐 경쟁자가 하나 사라졌군...
그래도 대만이라니, 좋겠다!
글로벌 펌이었군 거기
맛있는거 많이 먹고 와라~
이 블로그 언제 컴백했지?
소식이 좀 늦구나
백만년은 됐겠는데?
우와 아이폰에서 여기 접속하면 되게좋다... 컴에서 한거랑은 다르군
내가 심혈을 기울여
벽지 깔고 플래이트 달았는데
(안예쁘긴 하다 근데)
아무것도 없는 아이폰이 더 낫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배씨 이거좀 봐 나 침나올때까지 웃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 사람 집한채 박고 물렸나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 ··· f8cbc%24
아싸 8천 번 째 방문객 찍었다 ㅎㅎ
경품 없어?! ㅋㅋ